기쿠치 계곡

기쿠치시에 대하여

기쿠치 지역은 구마모토현 북부의 비옥한 평야에 펼쳐져 있다. 기쿠치가와 강은 평야 지역의 북동쪽에 위치한 산들로부터 흘러나오며, 그 물은 2천여 년 동안 이 땅에서 벼농사를 번영시켰다. 농업은 이 지역의 생활과 문화의 중심이다. 이 중 많은 문화는 11세기부터 16세기 초엽까지 규슈 중앙 지역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던 기쿠치 일족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쿠치 일족의 본거지는 현재의 기쿠치시인 성하 마을(봉건제 영주의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가지) 와이후였다.

기쿠치 일족의 융성

기쿠치 씨의 기원은 구게(조정에 봉직하던 귀족이나 고위 관리)로 봉직했던 관리인 후지와라노 노리타카로 보고 있다. 규슈 행정의 중심이었던, 현재의 후쿠오카 가까이에 위치한 다자이후는 현재 기쿠치 지방인 지역에 장원(큰 사원이나 신사, 귀족이 자신들의 재력으로 새롭게 개간한 땅)을 갖고 있었는데, 노리타카는 그 장원을 다스리기 위해 1070년에 이 땅으로 향했다. 노리타카는 자신의 성씨를 기쿠치라고 하고 기쿠치가와 강 가까이에 저택을 지어 성하 마을 와이후의 기초를 쌓았다. 쌀 교역으로 자손이 번영하여 기쿠치 씨의 지배를 확대했다.

노리타카의 자손은 능란한 외교술과 전장에서의 활약으로 일족의 세력을 확대했다. 이들은 기쿠치가와 강 유역의 교역을 독점하고, 평야 지역의 농산물을 판매함으로써 재원을 확보하여 일본에서 손꼽히는 농경지로 발전시켰다. 기쿠치 일족의 번영이 정점에 달한 때는 북조와 남조의 두 왕조가 권력을 두고 다툰 14세기였다. 기쿠치 일족은 남조를 지지했고, 남조의 천황은 기존 동맹관계의 강화와 새로운 동맹관계의 구축을 위해 젊은 아들 가네요시 친왕을 규슈로 보내주었다.

문화 유산

1348년, 가네요시 친왕이 와이후에 도착하자 기쿠치 일족은 황족에 걸맞은 접대를 했다. 마쓰바야시라고 하는 신년 축하 행사는 와이후를 찾은 황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린, 노래와 북, 피리 연주에 맞추어 춤추는 예능으로서 현재도 이어지는 전통 행사가 되었다. 기쿠치시의 중심부에 있는 푸조나무 거목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650년도 더 전부터 황자가 본 상연 목록을 매년 재현하고 있다. 이 나무는 가네요시 친왕이 심었다고도 하고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돋아났다고도 한다. 10월 13일에 열리는 마쓰바야시는 무대와 푸조나무 사이에 관객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여 황자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기쿠치의 마쓰바야시는 1998년에 일본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4세기 말에 남조가 멸망하자 기쿠치 일족은 차츰 쇠퇴한다. 그러한 가운데 기쿠치 일족은 지역 문화 발전에 힘을 쏟아 무사와 조닌(도시에 사는 상인과 장인) 교육에도 주목했다. 1500년대 전반에 기쿠치 씨가 다른 무장에게 패배한 뒤에도 그 유지는 계승되었다. 현재의 기쿠치시에는 기쿠치 씨의 영웅 동상이 곳곳에 있으며, 일족이 살던 성터의 돈대에는 그 위인을 모시는 신사가 세워져 있다.

매력적인 경치

18세기 이후 기쿠치는 동북쪽 산간 지역의 매력적인 경치로 유명해졌다. 기쿠치가와 강 최상류의 기쿠치 계곡은 일찍이 슈겐자(산악 신앙과 불교가 융합된 슈겐도를 실천하는 사람)가 수행하던 장소로서 자연이 험한 계곡이며, 1772년의 기행문에 처음으로 명승지로서 소개된 곳이다. 폭포와 몇 종류의 원시림이 있어 다양한 동식물을 길러내고 있다. 현재 기쿠치 계곡은 인기 있는 하이킹 명소이며, 기쿠치의 자연 환경에 관한 정보를 전시한 현대적인 방문자 센터도 있다.

기쿠치 계곡

기쿠치 계곡은 기쿠치시 중심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으며, 시의 동쪽 끝에 있는 울창한 숲속을 일직선으로 가르는 총길이 4킬로미터의 계곡이다. 이곳은 폭포와 완만한 물의 흐름이 번갈아 나타나는 독특한 경관을 지닌 조용한 하이킹 명소다. 화산성 지형으로서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기후의 차이가 만들어낸 자연

기쿠치 계곡은 기쿠치 평야를 남서로 약 71킬로미터를 흘러 아리아케 해로 흘러들어가는 기쿠치가와 강의 원류다. 아소산 칼데라의 외륜산이 발원지인 많은 계류가 합류하는 해발 약 800미터 지점에서 강과 계곡이 형성된다. 거기에서 흘러내려와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해발 500미터가 된다. 불과 4킬로미터 사이에 고도 차이가 300미터나 되기 때문에 상류의 한랭한 지역에서는 전나무와 떡갈나무 숲, 하류의 온난한 지역에서는 상록활엽수가 있는 등, 계곡의 생물다양성이 크게 변화한다. 이렇게 기후 조건이 혼재하고 삼림과 하천 생태계가 공존하여 다양한 소형 포유류, 개구리와 도마뱀, 조류, 곤충류를 끌어들이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치

가파른 폭포가 연속되는 기쿠치 계곡의 드라마틱한 광경은, 계곡 남동쪽에 위치한 화산인 아소산의 영향과 수만 년에 걸쳐 끊임없이 흐른 물이 상호 작용한 결과다. 아소산은 27만 년 전부터 9만 년 전에 걸쳐 네 번의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다. 이 분화로 방출된 분출물이 나중에 기쿠치 계곡이 되는 골짜기에 퇴적되었다. 이 분출물은 주로 고온에다 두텁게 퇴적된 화산재였기 때문에 땅에 떨어질 때 용융되어 용결응회암이라고 하는 암석으로 변화했다.

용결응회암은 주위의 공기와 접해 식으면 암석이 수축하여 표면에 갈라진 틈이 생긴다. 이 냉각이 진행되면 틈이 깊어져 기둥 모양으로 규칙적으로 갈라진 주상절리가 형성된다. 암반 위를 흐르는 물이 이윽고 이 틈으로 파고들면서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깎아지른 절벽이 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기쿠치 계곡에서는 이렇게 암반에 수직 방향으로 갈라진 틈이나 침식에 의해 산의 표면에서 무너져내린 큰 돌이 강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교적 급한 강의 흐름과 용결응회암이 큰 덩어리로 깨지기 쉬운 경향이 맞물려 기쿠치 계곡의 경치는 늘 유동적이다. 현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암석은 약 27만 년 전에 일어난 아소산의 첫 대분화로 형성되었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그보다 늦게 형성된 층은 이미 물에 의해 침식되었다.

기쿠치 계곡의 물

아소산 북서쪽의 산들에서 발원하는 많은 시냇물이 기쿠치 계곡에서 합류하여 기쿠치가와 강을 형성하고 있다. 계곡의 물은 해발이 높은 비경에 있는 강답게 맑고 차갑다. 이 물은 화산성 광물을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아 마그네슘이나 칼슘 함유량이 적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쿠치가와 강은 아소산 칼데라의 외륜산 북서쪽 산 정상에 가까운, 해발 800미터 이상의 높은 지역에서 형성된다. 강의 원류는 전부 칼데라 외측에 있으며 칼데라의 밑면보다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강에 흐르는 물은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칼데라를 형성하는 고대의 화산암 층에 의해 물이 여과된다. 이러한 지형과 지질이 일본 명수 100선에도 선정된 기쿠치 계곡의 맑은 단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계곡의 단물과 화산암의 상호 작용은 강의 표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암반이 밝은 곳에서는 물속의 물질에 방해받지 않고 햇빛이 암반까지 도달해 코발트블루 빛으로 보인다.

계곡의 하류에 위치하는 기쿠치 평야가 2,000년이 넘도록 대규모 취락을 유지해온 것은 기쿠치가와 강의 풍요로운 물 덕택이다. 기쿠치가와 강과 그 주변의 비옥한 농경지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벼농사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기쿠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은 예전부터 활발한 술 양조업을 뒷받침해왔다.

가케마쿠노타키 폭포

가케마쿠노타키 폭포는 기쿠치 계곡에서 가장 낙차가 큰 약 20미터 높이의 폭포다. 계곡의 방문자 센터 가까이에 있는 다리 바로 아래에 있어서 폭포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보라 너머로 계곡의 하류를 볼 수 있다. 조건에 따라서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걸릴 때도 있다.

기쿠치 계곡을 대표하는 험준한 폭포이기도 하다. 기쿠치 계곡의 화산암은 분화에 의한 고온의 물질과 저온의 공기가 상호 작용하여 수직 방향으로 갈라진 틈이 형성되어 있다. 이 갈라진 틈으로 물이 흘러들어 직사각형의 바윗덩어리가 떨어진다. 그 결과 깎아지른 절벽이 되고 이러한 폭포가 형성된다.

‘가케마쿠’라는 폭포의 이름은 ‘걸려 있는 막’이라는 의미로서 폭포수가 뒤쪽의 절벽을 가려 무대와 관객을 가르는 커다란 무대막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

레이메이노타키 폭포

레이메이노타키 폭포는 기쿠치 계곡의 방문자 센터에서 이어지는 산책로에서 맨 처음 나오는 폭포로서 아마 계곡에서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장소일 것이다. 폭포수는 보통 폭포의 가운데에 있는 이끼 낀 큰 바위의 한쪽에 치우쳐 흘러내릴 뿐이지만, 비가 오거나 하여 강의 수위가 올라갔을 때에는 이 바위 주위에 몇 개의 작은 폭포가 형성된다. 낙차는 5미터로 비교적 완만하여 물보라가 새벽의 안개와 닮았다는 데서 새벽을 의미하는 ‘레이메이(여명)’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포 아래의 용소는 잔잔하여 걸어서 폭포 가까이까지 가야 물소리가 들린다. 폭포에서 산책로를 오르면 1823년에 다이묘(넓은 영지를 다스린 대영주)가 건축 자재로서 심은 삼나무 숲이 있다. 벌채되지 않고 남은 이 나무들은 강 위에 우뚝 솟아 날다람쥐의 서식지도 되고 있다. 날다람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무에 올라 나무 껍데기를 벗겨내기도 한다.

류가부치 용소

기쿠치 계곡의 두 산책로 가운데 짧은 쪽의 산책로에서 방문자 센터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다리 옆에 고요한 류가부치 용소가 있다. 용소의 물은 특히 맑은 날에 햇빛이 비치면 선명한 푸른색으로 보인다. 이는 기쿠치 계곡 강바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교적 옅은 색의 바위 위를 미네랄 성분을 거의 함유하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다리 위쪽으로 가는 긴 쪽 산책로에는 느티나무나 단풍나무 그늘 아래에 ‘기쓰네노카미소리’(Lycoris sanguinea)라고 하는 석산의 일종이 나 있다. 초봄에 이 식물은 좁고 긴 잎이 나는데 잎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면도칼과 닮아서 사람들은 여우가 숲을 돌아다닐 때 털을 정리하는 데 쓴다고 상상했다(‘기쓰네노가미소리’는 ‘여우의 면도칼’이라는 뜻이다). 주황색 꽃은 잎이 전부 시든 후인 8월에 핀다.

덴구다키 폭포

높이 8미터의 덴구다키 폭포는 기쿠치 계곡에서 큰 낙차와 가장 큰 낙수 소리를 자랑하는 폭포 가운데 하나로서, 물이 계단 모양 암반 위를 타고 내려와 아래의 류가부치 용소에 흘러든다. 류가부치 용소에 놓인 다리에서는 폭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양쪽 기슭의 산책로에서도 볼 수 있다.

일찍이 덴구다키 폭포는 덴구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울창한 덤불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덴구란 슈겐도와 관계가 있는, 코가 긴 요괴 같은 전설상의 생물이다. 수백 년 전 이 폭포는 슈겐도의 신자가 정신 수양을 위해 장기간 대자연 속에서 나오지 않는 수행 장소의 일부였다고 생각되고 있다. 가까운 산에서 수행하는 신자는 때때로 덴구다키 폭포에 들러 차가운 물로 몸을 정결히 했다고 한다.

욘주산만타키 폭포

욘주산만타키 폭포는 기쿠치 계곡의 긴 산책로에서 방문자 센터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주요 폭포다. 크고 작은 여러 폭포가 연이어져 하루에 흐르는 평균 수량이 43만 석(7만 8천 톤)인 데서 ‘욘주산만’(‘43만’이라는 의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강에는 돌출된 바위들이 있어 폭포 중간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으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욘주산만타키 폭포 부근의 산 표면에는 서늘한 기후가 필요한 전나무와 비자나무 등의 침엽수가 자라고 있는데, 이들은 따뜻한 계곡의 하류 지역에는 없는 나무들이다.

호간케야키

욘주산만타키 폭포를 지나 기쿠치 계곡의 두 산책로 가운데 긴 쪽에서 몇 걸음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 위에 솟아 있는 ‘호간케야키’에 다다른다. 화산성 바위에 거인의 손가락처럼 달라붙어 있는 굵은 뿌리는 침식에 의해 대부분 노출되어 있다. 산 표면을 흐르는 물이 큰 바위 주위의 흙을 서서히 쓸어가서 이 나무는 지상에서 수 미터 높이에 올라가 있다.

느티나무는 튼튼하고 적은 영양분으로도 크게 자랐기 때문에 신비한 기운을 지닌 나무라고 믿어져왔다. 특히 ‘호간케야키’처럼 훌륭한 나무는 신령이 깃든 나무라고 생각되고 있다.

히로카와라

기쿠치 계곡의 두 산책로 가운데 긴 쪽 산책로는 탁 트였으며 강이 얕아 흐름이 비교적 잔잔한 ‘히로카와라’에서 방문자 센터로 되돌아간다. 길은 개구리와 작은 도롱뇽, 수생 곤충의 서식지가 되는 작은 연못들 사이에 구불거리며 뻗어 있다. 또한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진 암석 지대가 눈에 띈다. 이 암석은 27만 년 전, 아소산 분화에 의해 방출된 화산재가 고온에 용융되어 형성되었다. 암반이 식어 갈라질 때 생겨난 틈은 물이 흐르면서 서서히 깊어졌다.

히로카와라에 놓인 다리 아래에서는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두 종류의 물고기 가운데 하나인 산천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또한 다리 위에서, 특히 상류 방향에서는 녹색의 민물 김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민물 김은 옛날부터 먹어왔으며 기쿠치 계곡의 민물 김은 특히 맛있다고 여겨졌다. 에도 시대(1603~1867년)에는 구마모토번의 다이묘(넓은 영지를 다스린 대영주)가 에도의 쇼군에게 지역의 민물 김을 헌상했다고 한다. 현재 민물 김은 상당히 귀해졌으며 기쿠치 계곡은 민물 김이 자라는 드문 곳 중 하나다.

모미지가세

모미지가세는 기쿠치 계곡에서도 특히 고요하고 그늘이 충만한 곳이다. 레이메이노타키 폭포보다 상류이며 짧은 쪽 산책로에서 되돌아가는 지점에 있는 다리의 하류에 위치한다. 강 양 기슭에 단풍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고 급류 위에도 가지를 뻗고 있어서 단풍이 든 여울이라는 의미의 모미지가세라는 이름이 붙었다. 단풍이 드는 계절은 특히 인기가 있어 붉은색과 주황색으로 선명히 물든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단풍이 떨어지면 때때로 물가에 형형색색의 양탄자를 깐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끼가 무성하고 시원한 그늘이 생기기 때문에 여름에 산책하기에도 좋다.

강변의 산책로에서 물가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어서 바위가 많은 물가를 수십 미터 걸을 수 있다. 단, 강에 가까운 부분은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쿠치 계곡의 식물다양성

기쿠치 계곡은 식물의 다양성으로 유명하다. 4킬로미터 계곡의 아래쪽 끝에서 위쪽 끝까지 해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기후에 걸쳐져 있다. 계곡의 아래쪽 끝은 해발 약 500미터, 기점은 해발 약 800미터에 위치한다. 계곡을 올라가면 식생이 상록활엽수 삼림에서 낙엽활엽수 삼림으로 서서히 변화하여, 상류 지역에서는 너도밤나무 숲이 주가 되는 삼림이 나타남을 알게 된다. 기쿠치 계곡에는 750~800종의 식물종이 있고, 그 가운데 수목은 250~300종이 자라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계곡의 하류 지역은 난대림이다. 짙은 녹색의 잎은 향기가 좋고 광택이 있으며 세 가닥의 잎맥이 특징적인 생달나무(Cinnamomum yabunikkei), 딱딱하고 질긴 가죽 같은 성질의 잎 뒷면이 흰빛을 띠는 데서 이름이 붙은 참가시나무(Quercus salicina), 3월부터 4월에 걸쳐 꽃잎이 없는 붉은 꽃이 무리지어 피는 조록나무(Distylium racemosum) 등이 있다. 중턱에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의 낙엽수와 삼나무가 많다. 모미지가세 부근에는 1823년에 다이묘(넓은 영지를 다스린 대영주)가 건축 자재로서 심었다는 큰 삼나무 숲이 있는데 볼만한 가치가 있다.

계곡의 산책로가 끝나는 히로카와라를 지나면 전나무와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은, 가지 끝에 적갈색의 작은 솔방울 같은 열매가 열리는 솔송나무(Tsuga sieboldii) 등의 침엽수, 그리고 톱니가 빽빽한 잎과 때로 ‘근육질’이라고 묘사되는, 매끄럽고 억센 줄기가 있는 서어나무의 일종인 개서어나무(Carpinus tschonoskii)라는 낙엽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너도밤나무와 물참나무(Quercus crispula) 등의 낙엽수는 평균기온이 난대보다 꽤 낮은 산 위에서 볼 수 있다.

계류 주변의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자라며, 계곡 내의 나뭇가지나 바위에서 20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로 선명한 녹색의 커튼처럼 드리워진 기요스미이토 이끼(Barbella flagellifera), 축축한 바위에서 잘 자라고 담뱃잎을 닮은 커다란 잎이 있는 이와타바코(Conandron ramondioides) 등을 산책로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와타바코는 여름에 옅은 보라색의 별 모양 꽃이 핀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포유류

기쿠치 계곡은 풍요로운 숲과 맑은 강이 만들어내는 생태계 내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낙원이다. 포유류로는 쥐, 두더지, 박쥐, 담비, 날다람쥐, 너구리 등 약 20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 동물들의 대부분은 작고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거의 볼 수 없다. 계곡에서 특징적인 포유류는 겨울잠쥐와 일본갯첨서 2종이다.

야행성인 겨울잠쥐(Glirulus japonicus)는 몸길이 6.5~8센티미터로 5센티미터 정도의 굵고 더부룩한 꼬리를 갖고 있다. 털은 연한 갈색이고 등에 검은 선이 있으며, 나무 위에서 과일이나 꽃의 꿀, 곤충 등을 먹으며 생활한다. 발가락에 작고 굽은 발톱이 있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다. 5개월 정도 동면하고 수명은 3~6년이다.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규슈에서는 희귀하여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갯첨서(Chimarrogale platycephalus)는 일본에 서식하는 육생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담수 지역에서 수중 생활에 적응한 동물이다. 몸길이 11~14센티미터이고, 회흑색의 짧은 털이 빽빽이 나 있으며,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 역할을 하는 뻣뻣한 털이 나 있다. 어두운 강을 헤엄쳐 수생 곤충, 작은 게와 새우, 물고기 등을 잡는다. 기쿠치 계곡처럼 여울과 조용한 연못이 혼재하는 장소를 좋아한다. 혼슈에서는 자주 볼 수 있으나 규슈에서는 비교적 드물고 시코쿠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양서류・파충류

개구리와 도롱뇽 등 대부분의 양서류는 물가에서 태어나 습한 숲에서 성장하고 산란을 위해 다시 물가로 돌아온다. 기쿠치 계곡처럼 두 환경이 공존하는 장소는 양서류에게 이상적인 서식지이며, 양서류를 먹이로 삼는 파충류도 모여든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양서류・파충류를 소개한다.

지쿠시부치 도롱뇽(Hynobius oyamai)은 계곡 삼림의 지표면이나 맑게 흐르는 물에 서식한다. 낮에는 바위 그늘에 숨어 있고, 밤에만 나와서 먹이인 쥐며느리 등의 곤충을 찾기 때문에 거의 볼 수 없다. 성체는 몸길이 11~15센티미터이고 청회색을 띠고 있다. 4월부터 5월에 걸쳐 물속의 바위 그늘에 알을 낳는데, 유생이 여름에 작은 시냇물이나 웅덩이에서 헤엄쳐 수생 곤충을 잡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을에는 숲으로 이동하며 식성도 변화한다. 규슈 북동부에만 서식한다고 한다.

기쿠치 계곡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개구리는 흑갈색의 다고 개구리(Rana tagoi)다. 몸길이 5센티미터 정도로서 강변의 연못이나 웅덩이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진주 같은 흰색의 올챙이가 알 속의 영양분만을 먹고 성장하는데, 완전한 암흑을 필요로 하므로 다고 개구리는 지하에서 흐르는 물에 산란한다. 올챙이는 물에서 나오기 전에 성장하면서 서서히 색소가 발달한다. 몸길이가 18센티미터까지 자라는, 일본에서 가장 큰 개구리인 서일본두꺼비(Bufo japonicus)도 자주 보이는데 계곡 산책로의 웅덩이에서 검은 올챙이를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기생개구리(Buergeria buergeri)라고 하는, 높이 올라가는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특징적인 개구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기생개구리의 울음소리는 4월부터 7월의 번식기에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로서 일본 고유의 시가인 하이쿠에서도 초여름을 나타내는 말로써 사용된다.

낙엽이 퇴적된 습한 삼림 지표면에는 일본얼룩배영원(Cynops pyrrhogaster)과 다카치호뱀(Achalinus spinalis)이 서식하고 있다. 일본얼룩배영원은 도마뱀과 비슷한 작은 영원(도롱뇽의 일종)으로서 배에 빨간색과 검은색 무늬가 있다. 강 가까이의 웅덩이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무늬는 개체에 따라 다르며 영원의 수명인 최대 25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다. 빨간색은 독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색이지만, 이 영원의 독은 보통 인간에게는 위험하지 않다. 한편 짙은 회색의 다카치호뱀은 독을 갖고 있지 않으며,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좋아하여 주로 밤에 좋아하는 먹이인 지렁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조류

기쿠치 계곡에는 연간 60종 이상의 조류가 서식한다. 이러한 다양성이 가능한 이유는 풍요로운 삼림과 맑은 강의 생태계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새는 인간을 피해 보통 하이킹하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도망간다. 하지만 일반인도 이 지역의 들새를 볼 수 있으며, 특히 여름철에는 특징적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쿠치가와 강 주변의 나무들에는 등과 날개가 회색, 배가 밤색, 머리가 흑백인 곤줄박이, 등이 황록색, 날개가 청회색, 머리가 검은색이고 뺨이 하얀 박새, 몸이 옅은 갈색과 회색이고 부리가 뭉툭한 오목눈이가 일년 내내 서식하고 있다. 강변에서는 등이 회색이고 배가 선명한 레몬색인 노랑할미새와 몸길이 40센티미터 정도로서 머리에 댕기깃이 나 있는 흑백의 뿔호반새도 자주 볼 수 있다. 계곡 상류에는 펼친 날개 길이가 최대 175센티미터에 이르는, 당당한 흑갈색의 맹금류인 뿔매가 서식하고 있다. 이 최상위 포식자의 존재는 식물 연쇄가 발달한 건강한 생태계를 나타낸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서는 철새가 계곡에 나타나는데,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오는 색깔이 선명한 큰유리새의 울음소리가 계곡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 새는 적어도 에도 시대(1603~1867년)부터 휘파람새, 붉은가슴울새와 더불어 ‘아름답게 우는 일본의 3대 새’로 여겼으며, 유려하고 아름다운 가락이 있는 울음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기르면서 친숙해졌다고 한다. 기쿠치 계곡에 찾아오는, 몸집이 더 크고 아름답게 우는 새는 두견이로서, ‘꾜꾜 꾜꾜꾜’ 하고 4구로 구성된 짧은 소리로 울어 천 년도 더 전부터 귀족들이 읊은 일본 고유의 시 와카에도 등장하고 있다.

고요함이 계곡을 감싸는 겨울에는 등이 갈색이고 배가 희며, 부리가 회색과 노란색인 흰배지빠귀가 먹이를 찾아 삼림 지표면을 돌아다니며 낙엽을 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잎이 진 나무들 사이에서 코퍼긴꼬리꿩이 드문드문 보일 때도 있다. 광택이 있는 갈색 깃과 긴 꼬리가 우아한 일본 고유의 새다. 수컷은 노란색 부리와 붉은 얼굴이 특징이고, 암컷은 몸집이 작고 몸 전체가 회갈색이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곤충류

기쿠치 계곡은 다양한 식물과 풍부한 수원 덕택에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계곡에는 1000종이 넘는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곤충은 다음과 같다.

산푸른부전나비(Celastrina sugitanii)는 봄에 계곡의 벚꽃이 필 무렵에 우화한다. 날개 윗면은 남색, 뒷면은 회백색에 작은 검은 점들이 있다. 수명이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고, 3월부터 5월에 걸쳐 강변의 웅덩이에서 눈에 잘 띈다.

산푸른부전나비의 철이 끝나고 빈도리(Deutzia crenata)의 흰 꽃이 피면 울릉범부전나비(Rapala arata) 등의 나비가 모인다. 날개 윗면은 짙은 푸른색, 뒷면은 흰색과 갈색의 줄무늬가 있고 부분적으로 주황색에 검은 점이 있다. 그 외에는 짙은 갈색의 날개에 흰 띠가 있는 줄나비(Limenitis camilla), 주황색과 검은색의 거꾸로여덟팔나비(Araschnia burejana) 등이 있다.

4월부터 7월 무렵에는 기쿠치가와 강의 급류에 몇몇 종류의 잠자리가 날아와 작은 수생 곤충들을 잡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몸길이 5센티미터 정도의 담색물잠자리(Mnais pruinosa)는 에메랄드 그린색의 몸에 선명한 주황색부터 아주 약하게 회색을 띠는 투명한 색까지 다양한 색의 날개를 갖고 있으며, 니혼카와톤보(Mnais costalis) 잠자리는 메탈릭 블루색의 몸체에 약간 어두운 주황색 날개를 갖고 있다.

6월은 히메보타루(Luciola parvula)의 계절이다. 낮에는 거의 볼 수 없으나, 해가 저문 뒤부터 심야까지 선명한 노란색 빛을 내뿜는 작은 개똥벌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웅덩이나 작은 강변의 연못을 눈여겨보면, 날개를 펼치면 12센티미터 정도의 큰 나비인 산제비나비(Papilio maackii)를 만날 수도 있다. 날개 윗면은 검고, 파란색과 녹색의 비늘가루로 덮여 있다. 제비나비(Papilio dehaanii)는 색이 산제비나비와 비슷하지만, 약간 작고 앞날개와 뒷날개 사이의 틈이 산제비나비만큼 뚜렷하지 않다.

기쿠치 계곡에 서식하는 어류

기쿠치 계곡의 차갑고 맑은 물에는 두 종류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산천어는 연어과 물고기인 송어가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강에 남은 종류로서 빨리 헤엄치며 몸길이가 최대 35센티미터까지 자란다. 경계심이 강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지만 낚시가 금지된 계곡의 연못을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공업화에 따라 기쿠치가와 강의 환경이 변하면서 한때는 상류 지역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나, 최근 수십 년 동안의 방류가 결실을 맺어 현재는 자연 부화가 가능한 개체군으로 간주되고 있다. 산천어가 알을 낳는 곳은 계곡의 긴 쪽 산책로 너머에 있는 히로카와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부근에서 눈에 띈 경우가 많다. 기쿠치 계곡 주변의 음식점에서는 산천어 소금구이를 먹을 수 있는데, 이 산천어는 근처 양식장에서 들여오고 있다.

산천어에 비해 버들치는 꽤 작고 계곡에서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녹색이 도는 금색에 배가 희고, 몸길이는 10센티미터 정도로서 서일본의 차가운 강 상류 지역에 서식한다. 산간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일상적으로 먹어왔으나 특별히 맛있는 물고기로 보지는 않는다. 산천어와 마찬가지로 기쿠치 계곡에서는 히로카와라에서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다.

기쿠치 계곡의 하이킹 코스

기쿠치 계곡은 방문자 센터를 기점으로 기쿠치가와 강변을 올라가는 두 산책로를 따라 산책할 수 있다. 짧은 산책로는 약 1킬로미터로서 걸어서 약 40분, 긴 산책로는 약 2킬로미터로서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두 산책로 모두 딱히 위험하지는 않으며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짧은 산책로는 방문자 센터를 출발하여 계곡에서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레이메이노타키 폭포 앞에서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넌다. 단풍과 이끼의 명소인 모미지가세를 거쳐 류가부치 용소에 도착하면, 다리를 건너 계곡에서 가장 크고 폭포수 소리도 큰 폭포 중의 하나인 덴구다키 폭포를 볼 수 있다. 그 후 다시 출발 지점을 향해 강의 흐름을 위에서 바라보면서 방문자 센터까지 완만하게 내려온다.

긴 산책로는 짧은 산책로와 같은 코스로 류가부치 용소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욘주산만타키 폭포를 향해 삼림 지대를 올라간다. 크고 작은 다양한 모습의 폭포가 연이어진 욘주산만타키 폭포 너머에는 흐름이 고요한 히로카와라가 있으며, 산책로는 개구리와 도롱뇽, 수생 곤충의 서식지인 작은 연못을 가로지른다. 히로카와라에 놓인 다리 앞에는 전망대가 있어 산책로에서 되돌아가는 지점이 되고 있다. 그 뒤 강 위의 급한 산의 경사면을 따라 구불거리며 나아가다 덴구다키 폭포에서 짧은 산책로에 합류한다.

기쿠치 계곡에서는 여행을 즐기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증진하기 위한, 가이드가 있는 ‘헬스 투어리즘’ 워킹 투어도 개최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과 요금은 기쿠치관광협회로 문의하면 된다.